폴리마켓은 암호화폐 기반의 온라인 예측 시장 플랫폼입니다. 예측 시장은 사전에 특정한 ‘사건’이 일어날지 여부를 두고 베팅합니다. 가격은 집단의 예측 확률을 반영해 실시간으로 변동됩니다. 당초 선거나 스포츠, 경제 전망과 관련한 이벤트를 베팅 대상으로 짧은 기간 급속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베팅 대상을 ‘전쟁’의 영역까지 확장했습니다. 이번 미국,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관련해 폴리마켓에서 이루어진 총 베팅 금액만 5억 달러(7,500억 원)에 달합니다. 폴리마켓의 경쟁 업체 ‘칼시(Kalshi)’까지 더하면 지난 2월 한 달간 이루어진 거래 규모만 180억 달러(27조 원)에 이릅니다.
내부 거래 의혹을 받는 트럼프 가문과 폴리마켓의 연결고리

예측 시장 플랫폼을 옹호하는 이들은 집단 지성을 통해 레거시 언론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폴리마켓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예측의 정확도는 결과가 확정되기 1달 전 기준으로 94%에 달합니다. 그러나 폴리마켓이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전쟁과 죽음을 대상으로 베팅한다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최근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기 수 시간 전인 2월 28일, 폴리마켓에 ‘마가맨(Magamyman)’이라는 계정이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3월 이전 권좌에서 내려올 것이라는 쪽에 거액을 베팅했습니다. 그리고 공습 당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타격으로 하메네이가 사망한 덕에 마가맨은 53만 달러(8억 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비슷한 시각 150개의 신규 계정이 폴리마켓에 개설되어 공습에 베팅했고, 109개 계정이 1만 달러(1,5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버블맵스(Bubblemaps)’는 의심스러운 계정 6개를 특정하고, 이들이 공습 직전에 총 120만 달러(18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란 공습 이전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체포 작전이 시작되기 수 시간 전, 익명의 계정이 ‘마두로가 1월 안에 실각한다’에 32,000 달러(4,800만 원)를 베팅하여 불과 몇 시간 만 40만 달러(6억 원)를 벌어들였습니다. 이것이 모두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했습니다. 내부 정보를 유용한 거래가 의심스러운 정황입니다.
논란이 더 커진 배경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폴리마켓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운영하는 벤처캐피탈 기업 ‘1789캐피털’은 폴리마켓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폴리마켓의 경쟁자이자 또다른 예측 시장 플랫폼인 칼시의 전략 자문도 겸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작된 폴리마켓에 대한 2건의 연방 단위 조사가 전격 취소됐습니다. 그리고 폴리마켓은 2025년 말 미국에서 정식 규제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민주당 크리스토퍼 머피(Christopher Murphy) 상원의원은 “트럼프 주변 사람들이 전쟁과 죽음을 이용해 떼돈을 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것은 미국 국민의 이익뿐”이라며 일축했고, 트럼프 주니어 역시 자신이 직접 거래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전쟁을 두고 벌이는 게임, 이른바 ‘워 카지노(War Casino)’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합니다. 특정 결과에 베팅한 사람들이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고치도록 기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0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인근 베이트 셰메시(Beit Shemesh) 지역에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The Times of Israel)’의 종군 기자 에마뉘엘 파비안(Emanuel Fabian)은 폭격 직후 미사일이 이스라엘 영토에 명중했다고 보도했는데, 기사가 올라가자마자 파비안에게 각종 살해 협박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90만 달러(13억 5,000만 원)를 잃었으니 90분 안에 기사를 고쳐라”, “기사를 고치지 않으면 잃은 돈보다 더 큰 돈을 써서 당신을 죽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에게 기사를 고치하는 협박이 이어진 이유는 그가 미사일이 이스라엘 영토에 명중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협박범들은 폴리마켓에서 ‘이란이 3월 10일 이스라엘을 타격하지 못 한다’는 쪽에 돈을 걸었고, 해당 베팅에 걸린 총 금액만 1,400만 달러(211억 원)에 달합니다. 이에 협박범들은 미사일이 ‘요격됐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수정하라 요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폴리마켓은 비극적인 전쟁을 바라보며 미사일 타격에 환호하고, 다른 이의 죽음에 환호하는 감각의 마비를 야기합니다.
그리고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비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쟁, 공습, 폭격에 대한 시기와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베팅을 한다면, 이는 군사 기밀 유출이자 금융 사기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을 유발하는 행위를 결정하고 베팅까지 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입니다.실제로 작년 이란과의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기밀 정보를 유출해 폴리마켓에 베팅한 혐의로 2명이 기소된 바 있습니다.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美 의회의 반격, 그리고 ‘윤리’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자, 미국 상·하원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의회는 지난 3월 17일 ‘벳 오프(Bets Off)’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벳 오프 법안은 전쟁과 테러, 암살 및 정부의 결정을 대상으로 한 베팅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불법 베팅 플랫폼에 대한 결제 차단 조항과 함께, 이를 위반시 형사 처벌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애덤 시프(Adam Schiff) 상원의원은 이와 별도로 ‘데스 벳(Death Bets)’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데스 벳 법안 역시 전쟁과 테러, 암살 및 개인의 죽음을 소재로 한 베팅을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법안 발의 움직임에 폴리마켓도 즉각 반응했습니다. 협박 메시지를 보낸 계정을 영구 정지하는 동시에 해당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했습니다. ‘핵무기 폭발’ 예측에 대한 마켓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조용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핵심인 전쟁 관련 마켓은 여전히 운영 중입니다. 폴리마켓을 취급하는 규제 당국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도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전쟁 관련한 베팅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아 아직 이를 금지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탓에 의회가 움직이는 사이에도 폴리마켓의 전쟁 관련 베팅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발전 시설을 폭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5일 연장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안에 다시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소를 폭격하겠다는 위협을 스스로 철회한 셈입니다. 그는 미국의 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매우 생산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지만, 이란은 어떤 협상도 없었다고 이를 즉각 부인했습니다. 이란 국영방송은 트럼프의 최후통첩 연장에 대해 “이란의 단호한 경고에 미국이 물러섰다”고 자평했습니다.
이렇게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나 폴리마켓의 베팅은 전쟁의 방향을 두고 베팅하고 있습니다. 폴리마켓에 따르면 미국이 4월 말까지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할 확률은 절반 가량이며, 연말로 시간을 확장하면 60%를 넘어섭니다. 일시적으로는 70%를 넘기도 했습니다. 이 지상전 가능성에 대한 베팅에만 총 2,300만 달러(346억 원)이 돈이 걸려 있습니다.
폴리마켓이 이렇게 예측한 데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국 제31해병기동부대(31st MEU)와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 ‘USS 트리폴리(LHA-7)’가 3월 13일 중동으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2,200여 명의 해병대와 F-35B 전투기, MV-22 수송기까지 탑재한 상륙 전용 전력입니다. 여기에 더해 캘리포니아의 제11해병기동부대(11st MEU) 2,500여 명이 항공모함 ‘USS 복서(CV-21)’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육군도 움직이는 중입니다. 제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은 루이지애나(Louisiana)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훈련을 전격 취소하고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포트 브래그(Fort Bragg) 군사기지’에서 대기 중입니다. 제82공수사단은 미국 육군 역사상 가장 높은 명성과 공적을 쌓은 최정예 사단으로서, 뛰어난 기동성을 바탕으로 명령만 내리면 18시간 내 전 세계 어디든 투입 가능합니다. 현재 중동에 집결 중인 미군은 5만 명에 달합니다.
이란의 석유 수출 비중 90%를 담당하는 카르그 섬(Khark Island) 점령 시나리오가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미국 국방부가 이란 병사와 민병대를 수용할 수 있는 억류 시설까지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도 흘러 나왔습니다. 이는 미국의 준비 상황이 단순한 억제력 과시 수준을 넘어선 단계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역시 “지상군 투입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그런 계획이 있더라도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습니다. 이로 인해 시장은 군 통수권자의 ‘입’보다 실제 병력의 이동 경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폴리마켓을 위시한 예측 시장은 원래 집단의 지혜를 모아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경제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본래의 기능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범위가 넓어져 국가 차원의 전쟁과 누군가의 죽음까지 예측 대상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돈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미 의회의 벳 오프 법안은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 가문과 폴리마켓의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정부가 직접 폴리마켓을 규제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는 두 가지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가진 세력이 해당 정보를 돈으로 바꾸는 내부자 비리, 그리고 누군가의 비극을 예측하고 적중하여 기뻐하는 인간성의 상실입니다. 결국 이는 ‘규제’의 문제가 아닌 ‘윤리’의 문제입니다. 전쟁과 죽음이 과연 베팅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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