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지노로 돌아오는 검은 돈, 수사 기술 발달하자 코인보다 안전한 돈 세탁 경로로 활용
- 국내 카지노 불법 환전 금액이 4,000억 원을 넘었지만 과징금은 고작 0.1% 수준
- 전문 인력 상시 배치로 감시망을 강화하고 불법 환전 금액에 따른 누진 과징금 제도 필요
각종 범죄 수익과 관련한 검은 돈이 한국 카지노 영업장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암호화폐를 통해 범죄 수익 세탁에 나섰던 범죄 조직들이 수사기관의 디지털 추적 기술 발달로 인해 카지노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카지노를 이용한 돈 세탁이 늘어나며 한국도 더 이상 돈 세탁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특히 최근 제주 등 국내 카지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보이스피싱 수익금을 세탁한 중국인이 붙잡히며 한국 카지노가 검은 돈의 유통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범죄 수익 세탁 경로로 활용되는 카지노 환전소

최근 검거된 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세탁 총책은 제주 등 한국 카지노가 검은 돈의 돈 세탁에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2024년 12월 11일 오후 8시 10분경, 112로 폭행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신고자는 “사람들에게 맞고 1,000만 원가량을 빼앗겼다”고 신고했습니다. 사건은 일견 평범한 폭행 사건처럼 보였지만,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신고자를 향해 “저 사람이 보이스피싱 총책이고, 제주 등 한국 카지노에서 돈을 세탁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현금을 묶은 띠지였습니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32세 중국인 남성의 가방에는 신고 금액의 8배에 달하는 8,000만 원 가량의 현금 다발이 들어 있었는데, 발견된 현금 다발의 띠지가 이미 입건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익금 띠지와 일치했습니다. 결국 서울경찰청 김포공항경찰대 수사 결과, 이 중국인 남성은 카지노를 중심으로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을 세탁하는 총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합법적인 외국인 등록증을 소지한 채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여러 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다른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부터 보이스피싱 수익금을 챙긴 뒤, 매주 제주와 내륙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방문해 자금을 세탁해 온 것입니다. 이들은 현금을 카지노 칩으로 교환한 뒤 다시 현금으로 환전하여 자금 출처 경로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돈 세탁 목적인 경우 카지노 게임을 거의 즐기지 않고 칩을 다시 현금으로 전환합니다. 최근에는 온라인카지노와 토토사이트가 많아지다 보니 온라인 베팅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온라인 베팅 사이트로 현금을 입금하여 게임 머니를 충전한 뒤에, 게임을 거의 즐기지 않고 게임 머니를 환전하는 것입니다. 수억 원대의 큰 금액을 한 번에 환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법망의 감시를 피하고자 수백만 원 가량의 소액으로 분할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환전하기도 합니다.
통상 돈 세탁 업자의 수수료는 원금의 35%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범죄 수익을 세탁할 수 있고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익명성 프리미엄의 대가가 무려 35%에 달하는 것입니다. 2,000만 원부터 의뢰가 가능하며, 의뢰 금액이 많을수록 수수료는 낮아집니다. 3%~40% 선에서 형성되며, 2억 원 미만 수수료는 30%이지만 그 이상은 3%만 제하기도 합니다. 카지노 정킷 에이전트를 경유하기 때문에 암호화폐보다 출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적습니다. 돈 세탁 업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건네거나, 업자의 대포통장으로 현금을 보내면 30분 안에 세탁된 현금으로 돌려 받는 방식입니다.
기존 방식으로 회귀한 이유, “너무나 투명한 코인”

카지노를 이용한 돈 세탁은 새로운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0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을 카지노 게임 칩으로 바꿔 게임 자금인 것처럼 위장하는 수법은 돈 세탁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법입니다.
돈 세탁 조직이 암호화폐를 버리고 다시 카지노를 이용하는 고전적인 수법으로 회귀하는 이유는 최첨단 암호화폐가 보증하는 ‘투명성’ 때문입니다. 과거 암호화폐는 거래 정보를 완벽히 암호화하여 높은 익명성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수사 기법이 발전하며 수사기관에 기존 거래 내역을 모조리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장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는 디지털 지문이 됐습니다.
현재 수사기관은 ‘온체인 분석(On-Chain Analysis)’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모든 거래 내역은 공개된 장부에 영구적으로 기록되는데, 수사기관은 이를 통해 특정 암호화폐 지갑에서 빠져나간 코인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지갑 주소를 하나로 묶어 분석하는 ‘클러스터링(Clustering)’ 기법과, 암호화폐의 출처를 섞어버리는 ‘믹싱(Mixing)’ 수법을 무력화하는 알고리즘이 도입되며 오히려 꼬리를 잡힐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2024년 10월 미국과 영국 검찰은 이러한 수사 기법을 활용해 범죄조직이 보유 중인 비트코인 12만 7,000개를 압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시세로 150억 달러(22조 원)에 달하는 거액이며, 비트코인 전체 유통량의 1.2%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압수 사례입니다. 호주의 크라운 카지노에서는 총 규모 60조 원에 달하는 의심 거래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암호화폐의 높은 투명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역으로 이용한 수사 기술이 발전하며, 국내에서도 암호화폐 이동 경로를 추적해 범죄가 발각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28일 경찰청은 암호화폐 수신 주소를 변경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유포하고 이를 통해 17억 원 가량의 암호화폐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리투아니아인을 조지아에서 검거하여 한국으로 송환했습니다.
경찰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와 해외 국가 6곳, 6개의 기업을 조사하는 등 광범위한 추적에 나선 결과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수사기관이 암호화폐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기법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 세탁이 어려워졌다”고 말하며, “카지노는 구조적으로 고액의 현금 유입과 유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시 돈 세탁의 이용 경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최근 ‘특정금융정보법’을 개정하여 암호화폐 사업자에 대한 규율 체계를 강화하고, 돈 세탁 방지를 위한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증가하는 초(超)국경 범죄와 민생침해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FATF 기준에 맞추겠다는 취지입니다. 암호화폐가 점차 제도권 안으로 흡수되며, 기존 금융권에 준하는 제재가 강해지자 암호화폐를 통한 돈 세탁은 과거와 같은 매력을 잃고 있습니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분, 과징금은 고작 0.1%
과거와 같이 다시 한 번 카지노로 검은 돈이 몰리고 있지만, 문제는 솜방망이에 그치는 처벌 수위입니다. 현행법에 따라 카지노 업체는 ‘카지노 환전영업자’로 등록하여 환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카지노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외화를 원화로 교환한 뒤, 원화를 카지노 게임 칩으로 교환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국 카지노 업체 11곳 중 10곳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적발된 업체의 불법 환전 금액은 무려 4,196억 원에 달했습니다. 적발된 업체들은 환전 과정에서 신고를 누락하거나, 장부를 거짓으로 작성해 검은 돈의 유입을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업체에 부과된 과징금은 고작 5억 87만 원으로, 불법 환전 금액의 0.12%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일부 업체는 과징금이 위반 금액과 비례하지 않아 의문을 샀습니다. 한 업체는 1,090억 원을 불법 환전했음애도 불구하고 과징금이 2,500만 원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590억 원을 불법 환전했던 다른 업체는 6,80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어 기준도 들쑥날쑥했습니다.
카지노 입장에서는 자금 세탁 업자 역시 환전 수수료를 내는 고객이며, 환전 규모가 다른 고객을 압도하는 만큼 VIP 고객에 해당됩니다. 설사 불법 환전이 걸리더라도 과징금보다 수익이 크니 자체적으로 업자를 적극 걸러낼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 해외의 경우 카지노의 돈 세탁이 적발되면 해당 업체는 막대한 제재가 주어집니다. 싱가포르는 ‘자금 세탁 방지 의무(AML)’를 위반할 경우 카지노 전체 수익의 최대 10%를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24년 11월 네바다 규제 당국은 자금 세탁 방지 규정을 위반한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 팰리스’ 카지노에게 적발 금액의 3배에 달하는 112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감시의 공백’ 또한 문제입니다. 관세청의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카지노 불법 환전 검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카지노가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 했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감시가 소홀한 공백 기간이 길어지는 사이 카지노 환전소가 통제 불능의 불법 돈 세탁 ‘성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행 정액제 과징금 처벌을 위반 규모에 비례하는 누진제 과징금으로 즉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동국대 황석진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위반 금액에 관계 없이 미미한 과징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범죄 억제 효과가 약하다”고 말하며, “불법 환전 거래가 집중된 업체에는 영업정지 등의 치명적인 행정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고 있는 ‘자금세탁방지(AML)’ 점검에 금융 수사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을 투입하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현재 제주도가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현금 거래나 고객 확인 의무 이행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있지만, 일선 공무원이 수행하는 탓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경찰대 서준배 행정학과 교수는 “돈 세탁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짧은 편이기 때문에, FIU에 신고되면 경찰이 전문 인력을 상시 배치하여 빠르게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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