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문제로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래 고민했다. 한국 미디어가 너무 편향된 시선으로 다뤄서 몇 자 적는다.
대학부터 석사까지 프랑스에서 살았고 지금도 거의 10년 가까이 체류 중이다. 프랑스 사람들을 대표할 순 없다.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과 얘기해 보고 상황을 살펴서 쓴 글이다.
약탈이나 경찰과 시위대의 폭력성보다, 왜 시위가 일어났고 특히 학생들이 왜 가담하는지를 말하려 한다.
이유로 거론되는 건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빠지고 빚 같은 문제가 늘었다는 것이다. 원래 유럽은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크고 작은 시위가 많은데, 최근 유럽 정부들이 이걸 무시해서 국민 감정이 더 커졌고 상황이 악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프랑스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유럽 내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프랑스는 엘리트주의가 만연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준비해 그랑제꼴(시앙스포 등)에 들어가야 정치계 입문이 가능하다. 한국보다 사립과 공립이 심하게 나뉘어 있고, 이 차이는 학교 시험 성적과 면접 등으로 겨우 따라잡는다. 그런데 최근 예산 문제로 교육 예산이 줄고, 고등학교 교사들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파업을 선언했다. 예산과 상관없는 사립, 소위 엘리트 학교들은 이런 문제가 없었고 그래서 고교생 시위가 점점 번졌다.
한국으로 치면 자사고나 과학고 같은 특수한 학교가 아니라 일반 인문계와 실업계만 문을 닫았다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는 예산 문제는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 즉 경찰은 그 뒤로 학교들을 돌며 시위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정문에서 최루탄을 터트렸다. 수업 자체를 방해하고, 공립학교의 중간 기말고사 같은 중요한 시험을 취소하거나 연기시켰다. 그들 입장에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 계층 사다리를 오를 유일한 기회가 박탈된 거다. 상류층 엘리트 학교는 물론 정상 일정으로 운영한다.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다 긴 휴직을 강제(?)로 당한 친구가 한 말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대의를 위한다 해도, 학생들을 학교에서 공부하게 뒀으면 자기들끼리 공부하고 경쟁하느라 시위에 가담하는 학생이 확 준다. 지금은 교사는 안 나오고 학교는 문을 닫고, 겨우 학교에 가도 경찰이 정문에서 최루탄을 던진다. 그럼 할 게 없어지고 성난 학생들은 시위대로 간다. 당장의 미래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프랑스 미디어도 이런 얘기는 많이 안 한다. LVMH 같은 유명 가문, 그룹에 후원받지 않는 미디어가 없다. 오래전부터 과해진 경찰의 폭력성에 사망한 학생들 같은 뉴스는 나오지 않고, 약탈과 시위대의 폭력성만 강조한다. 이런 미디어에서 소스를 받은 한국 언론사도 이런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아서 전한다.
현재 프랑스 경제 상황에는 난민이나 복지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 부담이 큰 건 노인연금이다. 특히 프랑스는 부자들의 연금이 매우 높다. 낸 만큼 받는다는 공정성과 관련된 거긴 하다. 그런데 연금 개혁 때 부자들의 연금은 지키고 가난한 사람의 연금을 줄이거나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갈라치기만 했을 뿐, 실질적인 재정적자 해소는 못 했다. 일자리 문제와 그에 대한 정부 태도도 있다. 마크롱이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에게 길 건너면 술집 있다고 말한 사건 같은 것. 거기다 부자 감세, 갈라치기, 마크롱의 개인 비리, 국민과의 기싸움까지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상당 부분 마크롱의 실책이 크다. 미국 같은 경제 모델을 가져오고 싶어 했지만 유럽에는 안 맞았고, 결국 AI 경쟁이나 다양한 산업에서 뒤처지는 문제만 나타났다. 이건 경직된 프랑스 사회의 문제인데도 비교적 만만한 서민 계층을 공격하고 그들 문제로 돌렸다. 공교육이 무너져 그나마 있던 개천용의 희망마저 짓밟히니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는 쪽에 가깝다.
지금 경찰 행태는 독재 정부에서 보던 것 같다. 고등학생들이 모여만 있어도 최루탄을 던져 해산시키고,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나와 있어도 던진다. 프랑스는 점심시간에 외부 마트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흔하다. 등하교를 해도 던진다. 시위대가 지하철역에 들어왔다고 민간인이 많은 지하철역에 최루탄을 던진다. 이번 시위는 아니지만 기자인 내 친구는 경찰 최루탄 총에 맞아 손가락에 금이 갔는데, 조서는 시위대의 폭력으로 인한 부상으로 작성됐다. 정정 요청도 안 받아들여졌고 보상도 사과도 없었다. 근 10년간 이렇게 강하게 진압해도 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요구를 무시하면 되니 정부가 이 스탠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 같다. 지금 시위는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아마 크리스마스 때까지 더 심해질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비합리적인 일을 한다면 대부분 그 뒤에 이유가 있다. 시위 중의 폭도나 여러 문제점은 개선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이 시위대에 나간 이유도 개선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프랑스를 싫어하는 걸 알지만 나는 프랑스가 좋다. 싼 학생 체류비나 학비가 아니었으면 석사까지 공부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다. 외국인인데도 비교적 공정한 기회를 얻고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20대 대부분을 보냈고 앞으로 몇 년은 더 체류할 계획인 고마운 나라다. 인터넷에 대두되는 문제점들도 사실이지만 다른 장점도 충분히 많은 나라다. 다만 경직된 엘리트주의와 점점 심해지는 유럽 정치인들의 비리, 계층 간 갈라치기 같은 문제는 차라리 이 기회에 뿌리 뽑혀서 더 개선되길 바란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조각상 표정 보소 ㅋㅋ 사다리 걷어차이고 밥도 못 먹은 얼굴임. 옆에서 그림 보는 둘은 평화롭네 ㄹㅇ